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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을 지나다 문득 발길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유리와 철골로 번쩍이는 신역사 바로 옆에, 10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붉은 벽돌 건물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처음으로 그 안에 들어가 봤는데, 천장 돔에서 쏟아지는 스테인드글라스 빛을 올려다보는 순간 솔직히 예상 밖의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이게 기차역이었다고?'라는 생경함과, 이 공간이 품고 있을 시간의 무게가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1925년 준공된 서울역 구 역사, 지금의 문화역서울284입니다.

근대 건축의 정수, 경성역이 품은 건축미
이 건물을 처음 본 사람들 중에는 "그냥 오래된 벽돌 건물 아닌가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내부를 직접 둘러본 뒤로 그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서울역 구 역사는 1922년 착공해 1925년 '경성역'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도쿄제국대학 교수였던 쓰카모토 야스시가 설계를 맡았고, 스위스 루체른 역사를 모델로 한 르네상스 양식과 비잔틴 돔을 결합한 독특한 외관이 완성됐습니다. 여기서 르네상스 양식이란 15~16세기 유럽에서 부활한 고전 그리스·로마 건축의 비례감과 장식성을 계승한 양식으로, 웅장하면서도 정제된 균형미가 핵심입니다.
건물 외벽을 감싸는 붉은 타일과 하단 모서리를 단단하게 받치는 화강암 마감이 첫 번째 볼거리입니다. 이 두 재료의 조합은 단순히 보기 좋으라고 선택한 게 아니라, 내구성과 시각적 위계감을 동시에 계산한 결과입니다. 제가 외벽을 가까이서 들여다봤을 때 화강암의 거친 결과 붉은 타일의 매끈한 면이 교차하는 디테일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중앙 홀로 들어서면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가 시선을 잡아끕니다. 스테인드글라스란 색유리 조각을 납선으로 이어 붙여 만든 장식 유리창으로, 빛이 통과하면서 실내에 색채 조명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1920년대 동아시아의 철도 역사 건물에 이 수준의 장식 요소가 쓰였다는 사실은 당시 경성역이 단순한 교통 시설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정교하게 기획된 상징 건축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당시 경성역은 규모와 정교함에서 도쿄역에 비견될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파피에 마체(papier-mâché) 기법으로 꾸며진 내부 장식입니다. 파피에 마체란 종이를 물에 불려 풀과 섞은 뒤 원하는 형태로 빚어 굳히는 전통 공예 기법인데, 이를 건축 내장재에 응용하면 석재처럼 보이는 정교한 부조 장식을 비교적 가볍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처음에 저도 저 돔 장식이 진짜 석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나서 다시 보니 오히려 그 기술력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 르네상스 양식 외관 + 비잔틴 돔의 결합: 1920년대 동아시아 철도 역사 중 손꼽히는 규모
- 붉은 타일 + 화강암 마감: 내구성과 시각적 위계감을 동시에 계산한 재료 선택
- 스테인드글라스 + 파피에 마체 내부 장식: 서양 근대 건축 장식 기법을 적극 도입한 결과
건축역사학회지(2018)에 실린 비교 연구에 따르면, 경성역은 당시 동아시아 철도 역사 가운데 건축적 완성도와 규모 면에서 최상위권으로 평가됩니다(출처: 건축역사학회). 저는 이 사실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천장 돔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제국의 언어였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역사적 의미와 문화역서울284의 과제
건축미만 보고 감탄하다가 이 건물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감정이 복잡해집니다. 아름다운 공간이 동시에 무거운 역사를 품고 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저도 아직 정리가 완전히 되지는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 경성역은 한반도의 물산과 인력을 대륙으로 실어 나르는 수탈의 전초기지였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플랫폼에서 학도병이나 강제 노역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면서도 1919년 의사 강우규가 이 역 앞에서 일제 재상을 향해 탄환을 던진 독립운동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공간에 수탈과 저항이 동시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이 건물을 단순한 근대 유산이 아닌 복합적인 역사의 증언자로 만듭니다.
광복 이후 경성역은 서울역으로 이름을 바꾸고, 산업화 시대 상경 인구의 첫발이 되어주었습니다. 명절 때 고향행 표를 구하려고 광장을 가득 메우던 사람들, 보따리를 들고 올라온 젊은이들의 희망과 눈물이 바닥에 스며든 공간입니다. 한국철도공사가 발간한 《한국철도 120년사》에도 서울역이 근현대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민중의 삶과 맞닿아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철도공사).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신역사가 들어서면서 구 역사는 철도 기능을 내려놓고 원형 복원 공사를 거쳐 '문화역서울284'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여기서 원형 복원이란 훼손되거나 변형된 건물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보존 작업을 말합니다. 문화재청(2012)의 복원 보고서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내부 마감재와 구조물을 상당 부분 원래 상태에 가깝게 되살렸습니다.
저는 복원된 내부를 직접 걸어보면서 시도 자체는 분명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쉬운 지점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현재 이곳에서는 현대 미술 전시나 디자인 페어가 주로 열리는데, 정작 '이 공간이 철도 역사였다'는 맥락을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는 상설 전시 공간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문화 자원 활용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근대 철도망의 역사와 이 공간의 정체성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상설 콘텐츠가 보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신역사와 구 역사가 물리적으로 붙어 있음에도 동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아, 매일 서울역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의 가치를 스쳐 지나치게 되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문화역서울284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나요?
A. 기본 입장은 무료이며, 진행 중인 기획 전시에 따라 유료인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별도 비용 없이 건물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는데, 방문 전에 공식 채널에서 현재 운영 프로그램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서울역 구 역사가 사적 284호로 지정된 이유는 뭔가요?
A. 1925년 준공 이후 약 80년간 대한민국 철도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한 역사적 가치, 그리고 르네상스 양식과 비잔틴 돔이 결합된 근대 건축으로서의 희소성이 주요 근거입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이자 독립운동의 공간이었다는 복합적 역사성도 중요하게 반영됐습니다.
Q. 경성역 시절 건물이 지금도 원형대로 남아 있나요?
A. 완전한 원형은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며 일부 내부 마감과 구조물이 변형되었고, 2004년 이후 원형 복원 공사를 통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준공 당시 모습에 가깝게 되살렸습니다. 문화재청 복원 보고서에 작업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Q. 서울역 신역사에서 구 역사로 바로 이동할 수 있나요?
A. 물리적으로는 인접해 있지만, 동선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지 않아 처음 방문하는 분들은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한참 헤맸습니다. 구 역사 정문은 서울역 광장 방향으로 나와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
서울역 구 역사는 그냥 오래된 건물이 아닙니다. 제가 직접 그 공간을 걷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했는데, 이 건물은 근대 건축의 기술적 성취와 일제강점기의 수탈, 독립운동의 투쟁, 산업화 시대 민중의 땀방울이 시대별로 차곡차곡 쌓여 있는 압축된 역사 그 자체입니다.
문화역서울284로 이어지는 전환은 분명 의미 있는 선택이지만, 철도 역사로서의 정체성을 상설 콘텐츠로 더 깊이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신역사와의 동선 연계도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역을 자주 이용하신다면, 한 번쯤 시간을 내어 붉은 벽돌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시길 권합니다. 천장 돔을 올려다보는 순간, 바쁜 이동 중에는 느끼지 못했던 시간의 두께가 전해질 것입니다.
참고: 문화재청 (2012), 《사적 제284호 서울 구 역사 원형 복원 및 수리 보고서》 / 한국철도공사 (2019), 《한국철도 120년사: 1899-2019》 / 서울역사박물관 (2015), 《경성역: 대륙철도의 관문에서 문화역으로》 / 건축역사학회지 (2018), 〈1920년대 경성역사의 건축적 특성과 동아시아 철도 역사 비교 연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