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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 죽령터널 인근 절벽 아래에 섰을 때, 저는 솔직히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울창한 숲을 뚫고 하늘 높이 솟은 콘크리트 교각 위로 선로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광경을 보면서, 현대의 대형 중장비조차 없던 시절에 오직 사람 손과 착암기만으로 이 산을 뚫었다는 사실이 실감났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입니다. 그 산을 넘기 위해 탄생한 루프형 터널과 고교각 철교는, 단순한 토목 구조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집념이 굳어진 결과물입니다.

산 속을 한 바퀴 도는 터널, 똬리굴의 공학
철도가 일반 도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철제 바퀴와 철제 선로 사이의 점착력(adhesion force)이 극도로 낮다는 것입니다. 점착력이란 바퀴가 선로에 밀착되어 구동력을 전달하는 힘인데, 이 값이 작다는 말은 경사가 조금만 가팔라도 바퀴가 헛돌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일반 도로에서 자동차가 15도 경사를 거뜬히 오르는 것과 달리, 열차는 대략 1,000m를 달려 25m 이상을 오르는 경사(25‰, 퍼밀)도 버겁게 느낍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루프형 터널(Loop Tunnel), 우리가 흔히 '똬리굴'이라고 부르는 구조입니다. 터널 내부를 나선형으로 360도 회전하도록 굴착해서, 직선으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고도 차이를 천천히, 완만하게 극복하는 방식입니다. 터널에 들어간 열차가 산 속을 한 바퀴 빙 돌고 나오면 어느새 훨씬 높은 곳에 나와 있는 것이지요.
제가 처음 중앙선 치악터널(옛 금대굴) 구조를 도면으로 확인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입구와 출구가 서로 다른 높이에 있으면서도 터널이 산 속에서 원을 그린다는 개념이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직접 옛 중앙선 노선도를 따라가며 지형도와 겹쳐 보고 나서야 "아, 열차가 말 그대로 산을 감아 올라가는구나"라는 감각이 왔습니다. 원주와 제천 사이의 험준한 치악산 자락을 오르기 위해 뚫린 이 터널은, 옛 비둘기호와 통일호 승객들에게는 터널 진입 전 발아래 보이던 마을이 터널을 빠져나온 뒤 까마득한 아래에 펼쳐지는, 일종의 마법 같은 순간으로 기억되는 구간이었습니다.
영동선 솔안터널은 이 개념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사례입니다. 태백산맥의 고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뚫린 총연장 16.2km의 장대 터널로, 내부에 루프형 선로를 구축해 스위치백 구간을 완전히 대체했습니다. 스위치백(switchback)이란 급경사를 오르기 위해 열차가 지그재그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 운행 방식인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선로 마모도 심한 단점이 있었습니다. 솔안터널은 그 불편함을 지하의 나선형 구조로 깔끔하게 해결한 셈입니다(출처: 한국철도공사).
- 치악터널(옛 금대굴): 중앙선 원주~제천 구간, 치악산 자락을 360도 나선형으로 관통하는 대표적 루프형 터널
- 솔안터널: 영동선 16.2km 장대 터널, 내부 루프형 선로로 스위치백 구간을 완전 대체
- 점착력 한계 극복: 철도의 낮은 점착계수(약 0.1~0.3)를 우회하기 위한 고도의 선형 설계가 핵심
철교와 폐선 유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터널이 산을 뚫는 기술이라면, 교량은 그 산과 산 사이의 빈 공간을 메우는 기술입니다. 특히 영동선 승부~석포 구간에서 낙동강 상류 협곡을 따라 이어지는 수십 개의 철교들을 직접 걸어서 바라본 적이 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사진으로 볼 때와 현장에서 발아래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교각을 올려다볼 때의 감각 차이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바위 절벽을 감싸 안듯 설치된 교각들은 1950년대 국내 산악 토목 기술의 수준을 그대로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옛 중앙선 길아천철교는 높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구조로, 교각(pier)이 곡선으로 배치된 점이 특징입니다. 교각이란 교량의 상판을 지탱하는 기둥 구조물인데, 직선이 아닌 곡선 배열은 험준한 골짜기의 지형 조건에 맞게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한 설계입니다. 단순히 콘크리트를 부어 세운 게 아니라, 각도마다 정밀한 구조 해석이 선행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제가 산악 철도 토목 유산들을 답사하면서 느낀 불편함이 하나 있습니다. "기술이 대단하다"는 감탄이 앞서다 보면, 그 공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자꾸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부설된 죽령터널 공사나 광복 직후 강행된 영암선(현 영동선) 산악 구간의 터널 굴착은 낙반 사고와 낙석 위험 속에서 이뤄졌습니다. 낙반이란 터널 굴착 중 천장이나 측면의 암반이 갑자기 무너지는 사고로, 당시 기술과 장비 수준으로는 예측도 대비도 쉽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노동자가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는데, 이를 기록한 기념비는 여전히 소수에 불과합니다(출처: 국토교통부).
또 하나의 문제는 폐선 이후의 방치입니다. 중앙선과 영동선이 복선전철화 및 직선화되면서 수많은 옛 똬리굴과 철교들이 운행을 멈췄습니다. 일부는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상당수는 풀숲 속에서 조용히 부식되고 있습니다. 근대 문화유산 지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반면 노후 구조물의 안전 문제를 이유로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두 입장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체계적인 안전 점검 없이 방치된 채 철거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봅니다. 문화재청의 근대 산업 토목 유산 현황 조사 보고서(2020)에서도 이 점을 중요 과제로 짚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루프형 터널(똬리굴)이 지금도 실제로 운행 중인가요?
A. 영동선 솔안터널 내부의 루프형 선로는 현재도 실제 열차가 운행 중입니다. 반면 중앙선 치악터널(옛 금대굴)은 노선 직선화 이후 운행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아직 운행 중인 똬리굴이 있다는 사실이 저도 처음 확인했을 때 꽤 놀라웠습니다.
Q. 스위치백이랑 루프형 터널, 뭐가 더 나은 방식인가요?
A. 운행 효율만 놓고 보면 루프형 터널이 훨씬 유리합니다. 스위치백은 전진·후진을 반복해야 해서 시간이 걸리고 선로 마모도 심합니다. 다만 초기 건설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에, 루프형 터널이 무조건 우월하다기보다는 지형 조건과 예산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장기적 운용을 고려하면 루프형 쪽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선택에 가깝습니다.
Q. 폐선된 옛 철교나 터널을 직접 가볼 수 있나요?
A. 일부 구간은 레일바이크나 트레킹 코스로 개방되어 있어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상당수는 안전 점검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어 무단 출입은 위험합니다. 관광 자원화된 공식 코스 위주로 방문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Q. 건설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을 기리는 곳이 있나요?
A. 아직 체계적인 기념 공간은 매우 드문 편입니다. 일부 지역에 소규모 표지석이 있는 정도이며, 역사적 기록 자체가 미흡한 경우가 많습니다. 토목 기술의 성과에만 주목하고 노동의 역사를 소홀히 다루는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론
산악 철도 토목 유산을 공학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과, 노동의 역사와 보존 문제까지 함께 바라보는 것 사이에는 꽤 큰 간격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현장을 걸어다니며 느낀 것은, 그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똬리굴의 나선형 구조가 얼마나 정교한지, 철교의 교각 배열이 얼마나 치밀한지를 이해하는 동시에,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과 희생이 왜 지금도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는지를 묻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폐선 이후 방치된 터널 입구와 교각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오랜 철도 역사를 딛고 나아가는 수소 전기 열차와 차세대 고속철도의 방향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참고: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 120년사: 1899-2019》(2019) / 대한토목학회지, 〈대한민국 근대 산악 철도 터널 및 교량의 토목공학적 특성 연구〉(2015) / 국토교통부, 《철도 폐선 부지 및 주요 교량 구조물 활용 실태 보고서》(2018) / 문화재청, 《근대 산업 토목 유산(철도 분야) 현황 조사 및 등록문화유산 지정 검토서》(2020)